김해 출신 손성현(23) 씨가 미국 프린스터대학교 플라즈마 물리학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프린스턴 대학교는 수년간 US뉴스가 선정한 세계 대학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으로 자연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손 씨가 합격한 플라스마 물리학 전공은 1년에 8명 안팎의 적은 학생을 선발하는데 손 씨는 지난 2월 아시아권 지원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선발돼 학위과정 5년간 등록금과 생활비 등 약 20억원 정도를 학교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그는 김해 경운중학교를 거쳐 경남과학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2017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이미 지역언론의 관심을 받았다(<김해뉴스> 2017년 2월 15일자 보도). 당시 손 씨는 카이스트에도 동시 합격했지만 원자핵공학자의 길을 걷고 싶다며 서울대 입학을 선택했었다. 

플라즈마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손성현 씨를 <김해뉴스>가 6년 만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울대 입학 후 6년 만에 다시 만난 손성현 씨. (사진=송희영 기자)
서울대 입학 후 6년 만에 다시 만난 손성현 씨. (사진=송희영 기자)

 

김해경운중·경남과학고 거쳐 서울대 석사
대학 2~3학년부터 플라즈마 물리에 관심

액체·고체·기체와 다른 물질 제4의 상태
플라즈마, 반도체 핵심공정에서도 활용
국내 독립 전공으로 연구하는 곳 없어

어릴 때 꿈은 장애인 돕는 로봇공학자
 

Q. 우선 프린스턴대학교 박사과정 입학을 축하한다. 플라즈마 물리학 전공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학문인지 쉽게 설명한다면.
플라즈마는 액체·고체·기체와는 다른 물질 제4의 상태로 불리운다. 하늘에 보이는 태양이나 번개 등이 좋은 예시다. 플라즈마는 매우 높은 온도에서 원자가 쪼개지며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 된 뒤, 이들이 재결합 하지 않고 공존하는 준 중성(Quasi-neutral) 상태로 특정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플라즈마의 거동을 해석하는 것은 고차원 물리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데, 약 100년 전부터 발전해 온 플라즈마 물리학은 고도의 물리 이론 및 다양한 방식으로 플라즈마를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조건에서 플라즈마가 발생하는지, 구성입자 간의 상호작용에서 야기되는 다차원 복잡성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Q. 박사과정으로 플라즈마 물리학을 선택하게된 동기가 있나.
플라즈마는 물리학적 측면에서만 의미있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핵심공정에 모두 플라즈마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플라즈마를 활용한 반도체 연구를 하다가 선두업체들이 모두 미국기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반도체는 잘 만드는데 핵심 플라즈마 기술은 모두 해외에서 가져다 쓴다. 우리나라에도 플라즈마 물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국내에는 플라즈마 물리를 하나의 독립된 전공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다. 어떤 대학에서는 전기공학과에서, 또다른 대학은 화학공학과에서, 어디는 물리학과에서 가르친다. 


Q. 반도체 산업에서 플라즈마는 어떻게 활용되나.
8대 공정 중 절반 이상이 플라즈마 장비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산화막을 깎아내 원하는 패턴을 그리는 식각공정이나 웨이퍼에 특정 물질을 쌓아올리는 증착공정에서도 플라즈마는 필수다. 단적으로 네델란드 ASML사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는 고밀도 플라즈마를 활용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알려진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플라즈마 물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Q. 플라즈마 물리학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대학 2~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입학 당시에는 원자핵공학자의 꿈을 키웠다.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도 많지만 핵기술을 이용하면 청정에너지로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사고가 났다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제대로 연구해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학과 공부를 하면서 플라즈마와 핵융합 등을 배우면서 방향을 조금 틀었다. 학문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같은데 그게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반도체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Q.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중학교 때까지는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이 장애아동을 위한 어린이집을 오랫동안 운영하셨다. 부모님처럼 교육의 방식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회에 기여할 수 없겠지만 로봇을 만들거나 기술을 개발하면 장애인을 도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과학고에 들어가면서 눈이 많이 트였다. 당시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물리였다. 원자력발전의 원리를 공부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공학자·과학자로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손성현 씨는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를 '수학의 정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이 책의 장점을 소개했다. 사진은 김해도서관 열람식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손 씨의 모습. (사진=송희영 기자)
손성현 씨는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를 '수학의 정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이 책의 장점을 소개했다. 사진은 김해도서관 열람식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손 씨의 모습. (사진=송희영 기자)

 


호기심 많았던 어린시절 '왜'라는 질문
자연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데 '재미'

박사된 후 한국 연구소·대학서 활동할 것

스트레스 관리법은 주변사람과 대화
'연구자와 자신' 분리하는 균형감 중요
"지역 후배들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길"


Q. 물리를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보통 '왜'라는 질문으로 했던 것 같다. '건물 기둥은 왜 이렇게 많을까', '자동차 바퀴는 왜 4개일까', '자동차 바퀴가 더 많으면 안 될까' 이런 식의 물음들이었다. 과학고에 들어가서 이런 질문들이 깔끔하게 수학적으로 풀어지면서 자연을 해석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 자연은 그냥 바라만봐도 경의로울 때가 많은데 그것들을 논리로 해석하는 게 좋았다. 플라즈마 물리도 마찬가지다. 플라즈마는 이름도 생소하고 난해한 물질 상태지만 그걸 물리라는 인간의 약속을 통해서, 수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게 낭만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짜릿하고 재미있다.


Q. 박사학위를 받고 난 이후 계획은 따로 생각해봤나.
박사학위를 받으면 한국에 돌아와서 연구소나 대학에 들어가서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유학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배워서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 지난달에 프린스턴대학 초청으로 잠깐 대학을 다녀왔는데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연구장비 등이 너무 많았다. 유학 이후 동료 연구자와 학계에 연구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Q. 그동안 순수 국내파 영재로 최고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미국에서 또다른 도전을 시작하는데 언어장벽은 문제 없나.
고등학교나 대학 때 영어로 연구하는 건 많이 해봤다. 대학원에서는 대부분 영어논문으로 공부하고 논문도 영어로 썼다. 국제 컨퍼런스에 발표도 여러번 해보고 연구주제 토론 경험도 있어서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 물리나 수학보다는 영어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잘됐다. 가서 많이 배워 오겠다.
 

아버지 손재익 씨와 환하게 웃으면 이야기하고 있는 성현 씨. 그는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를 친구 등 주변 사람과의 대화라고 설명했다. 가족은 손 씨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사진=송희영 기자)
아버지 손재익 씨와 환하게 웃으면 이야기하고 있는 성현 씨. 그는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를 친구 등 주변 사람과의 대화라고 설명했다. 가족은 손 씨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사진=송희영 기자)

 


Q. 지금까지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텐데 본인이 가장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는 상황은 어떤 때인가.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시험을 치고 나서, 논문을 끝내고 나서, 컨퍼런스 발표를 마치고 나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최선을 다해야 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면 주로 주변 친구들, 가족과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내가 복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주변에 공감해 줄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운동도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된다.


Q. 6년전 인터뷰에서 자기만의 공부법(마인드맵)을 찾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어딜 가더라도 해낼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서울대에서도 통했나.
(밝게 웃으면서) 서울대에서도 통했다. 그런 걸 한번이라도 체득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자신만의 공부법,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법, 스케줄 관리법, 이런 걸 아는게 중요하다. 대학가서도 깊이만 다를 뿐이지 머리에 남기고 이해하는 건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게 공부했다. 시험공부를 하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결국 이 사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뭘까, 그 사람의 사고의 흐름을 캐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공부하면 일단 이해가 잘 되고 내가 누군가에게 다시 이런 식으로 설명해 주면 듣는 사람도 좋아했다.


Q. 좌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나 좋아하는 단어가 따로 있나.
'균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든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평소 연구자로서의 나와 현실적 나를 분리하는 균형잡기를 시도한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그 결과로 희비가 교차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안 됐다고 자책하기도 하고 내 가설이 완전히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난 연구 외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다, 이게 안 되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Q. 20년 뒤 자신의 모습, 어떨 거라고 생각하나.
20년 뒤 모습을 지금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구자가 되려고 한 것도 그때 그때 시대가 필요한 학문과 연구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노하우를 남에게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엔 연구자가 돼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새로운 걸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Q. 끝으로 모교인 김해 경운중 후배를 비롯한 지역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평소에 김해지역에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흔한 말로 들리겠지만 넓게 보고 넓게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다양하게 탐색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유튜브나 책으로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눈으로 보고 느끼는 현장감이 중요하다. 견학과 체험의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한다. 
 

손성현 씨는 지역 후배들에게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볼 것을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당국과 학교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손 씨의 생각이다. (사진=송희영 기자)
손성현 씨는 지역 후배들에게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볼 것을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당국과 학교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손 씨의 생각이다. (사진=송희영 기자)

 

 

김해뉴스 송희영 기자 editor@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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